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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그린 그림을 우리는 왜 진짜 예술로 느끼는가?

by 제이제이홈 2025. 5. 19.

요즘 SNS나 전시회에서 AI가 만든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며 감동을 받기도 하고 예술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감정도 없는 기계가 만든 그림을 우리는 왜 진짜 예술로 느끼는 걸까요? 이 글에서는  AI 그림의 감동 구조, 예술 소비 방식의 변화에 대해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AI 그림의 감동 구조
AI 그림의 감동 구조

감정을 담지 않은 그림이 감정을 흔들다 – 감정의 투영 이론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Midjourney나 DALL·E 같은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앞에서 감탄하고, 심지어 감동을 받는다.마치 인간 화가가 고뇌 끝에 붓질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질 때조차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의 ‘감정 투영(Psychological Projection)’ 메커니즘을 살펴봐야 한다.사람은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 자체보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투영해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그림에서 슬픔을 느끼는 건, 그림이 슬퍼서가 아니라 우리가 슬픔을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의 주체는 ‘작품’이 아니라 ‘관객’이다. AI가 만든 그림도 마찬가지다. 형태나 구성이 인간의 예술 양식을 닮아 있으면,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감정과 해석을 끌어낸다. AI가 단순히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해 조합해낸 결과물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구도, 색감, 분위기에서 관객은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또한 현대미술에선 이미 창작자의 감정보다 관객의 해석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AI의 작품이라고 해서 덜 감동적이라고 할 이유는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AI가 만든 그림이 감정을 건드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그 감정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본질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라면,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창작의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시대 – ‘아우라’의 종말

과거에는 예술의 가치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창작자의 혼과 노동에 두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점점 결과 중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 그림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면,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든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가는 것이다.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1930년대에 이미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아우라(Aura)를 잃는다’고 주장했다.그의 말대로라면, AI가 만든 그림에는 인간의 손맛이나 일회성, 희소성이 담기지 않기에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다.하지만 과연 지금도 이 개념이 그대로 유효할까?우리는 이미 디지털 이미지, 사진, 3D 렌더링 등 수없이 복제 가능한 이미지들에 감동하고 있다.심지어 AI가 만든 일러스트를 ‘갖고 싶다’고 느끼고, NFT로 거래하며, 전시회에 걸고, 예술로 소비한다.이것은 ‘과정을 몰라도, 창작자가 없어도, 예술은 성립된다’는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는 현상이다.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좋으면 그만”, “예쁘면 예술”이라는 직관적 기준을 선호한다.
미술 작품이든 음악이든 그 출처보다는 내게 어떤 인상을 남기느냐가 핵심 가치가 되고 있다.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AI 그림도 다른 예술작품과 동일한 지위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AI가 창작했다는 정보는 이제 감상에 큰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오히려 “이게 진짜 AI가 만들었다고?”라는 놀라움과 기술적 경이로움이 감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즉, 창작 주체가 사람이냐 기계냐보다 어떤 결과를 보여줬느냐가 예술 소비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성’, 기계가 담아낸 ‘인간성’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AI가 만든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그 속에서 인간적인 무엇을 느끼기 때문이다.
기계가 만들어낸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고독, 희망, 상실, 환희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우리는 그 순간 기계가 아닌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이것은 AI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해석 방식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감성의 교차점이다.AI는 감정을 알지 못한 채 단지 수많은 인간의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 이미지를 생성하지만,그 결과물은 ‘사람이 만든 것보다 더 사람다운 그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그 이유는 AI가 학습한 데이터 자체가 사람의 감정, 문화, 경험이 담긴 창작물이기 때문이다.즉, AI는 비록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감정이 녹아든 수천만 개의 이미지를 토대로 결국 다시 인간적인 감정을 닮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게다가 관객은 AI 그림을 볼 때, "기계가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어?"라는 놀라움과 함께,거기서 비로소 자기 존재의 소중함이나 기술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기계가 만든 결과물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정체성과 창의성의 경계를 되묻고,그 경계를 고민하는 그 자체가 새로운 감정 체험으로 이어진다.즉, AI가 만든 그림은 단지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기술의 만남이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의 공간이며,그 안에서 우리는 익숙한 감정을 낯선 방식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그렇기에 우리는 '기계가 만든 그림'에서도 진짜 예술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